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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이 묘사하는 첫째 화,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 재앙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파괴의 왕 아바돈이 이끄는 마귀적 군대의 상징과 다섯 달간의 고통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분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주권, 그리고 성도의 보호에 대한 신학적 깨달음이 있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서론: 일곱 나팔, 심판의 서곡과 첫째 화의 도래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환상으로 가득 찬 묵시문학의 정수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역사와 종말에 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이어지는 심판의 연쇄 구조는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본고는 이 중에서도 '화(禍)'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다섯째 나팔, 즉 요한계시록 9장 1절에서 12절에 나타난 '첫째 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이 단락은 땅에 떨어진 별, 무저갱(ἄβυσσος, abyssos)의 열림, 그리고 그곳에서 출현한 기괴한 형상의 황충 떼를 통해 전개되는 초자연적 재앙을 묘사합니다. 본론에서는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떨어진 별'의 정체, 황충 재앙의 상징적 의미와 그들의 제한된 임무,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솔하는 '무저갱의 사자' 아바돈의 역할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첫째 화가 담고 있는 신학적 메시지를 해부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본론 1: 떨어진 별과 열린 무저갱: 혼돈의 해방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요한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목격합니다(9:1). 이 '별'은 문자 그대로의 천체가 아니라, 인격적 존재를 상징하는 묵시문학의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존재의 정체에 대해 두 가지 주요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첫째, 이사야 14장 12절("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과 누가복음 10장 18절("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에 근거하여 타락한 천사장, 즉 사탄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는 천사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문맥상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는 수동태 표현은 그의 행동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허용된 것임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역할입니다. 그는 무저갱의 열쇠를 사용하여 심연의 문을 엽니다. '무저갱'은 신구약 성경에서 악한 영들, 특히 마귀들이 감금되는 장소, 통제 불가능한 혼돈과 악의 근원으로 묘사됩니다. 그 문이 열리자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를 어둡게 합니다(9:2).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악의 세력이 세상을 뒤덮어 영적 분별력을 상실케 하고 진리의 빛을 가리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즉, 다섯째 나팔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 봉인되었던 악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해방되어 지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심판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재해를 통한 이전의 심판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재앙의 시작을 알립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본론 2: 기괴한 황충의 형상과 제한된 임무


연기 속에서 나타난 황충 떼(9:3)는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기괴하고 복합적인 상징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메뚜기가 아니라, 여러 동물의 특징이 결합된 초자연적 존재, 즉 마귀적 군대(demonic army)로 묘사됩니다.

  • 외형의 상징성: 그들의 모습은 전쟁을 위해 준비된 말 같고(전투성, 공격성), 금 같은 관을 썼으며(거짓된 권위, 승리자 흉내), 사람의 얼굴을 가졌고(지능, 이성), 여자의 머리털이 있으며(매혹 또는 당시 야만족의 모습), 사자의 이빨(잔혹성, 파괴력), 철 호심경(견고함, 무적), 그리고 전차와 같은 날개 소리(공포감, 위압감)를 지녔습니다. 이 기괴한 조합은 이들이 자연계의 존재가 아닌, 지옥의 심연에서 올라온 혼돈과 파괴의 화신임을 명백히 합니다.
  • 제한된 임무: 이 마귀적 군대의 임무는 매우 구체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첫째, 그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도록 허락받습니다(9:4). 이는 요한계시록 7장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성도들은 이 영적 고통에서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도 그의 백성을 향한 신실한 보호가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학적 단서입니다. 둘째,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할 권세를 받습니다(9:5). '다섯 달'은 실제 메뚜기 떼가 활동하는 기간을 상징할 수도 있고, 완전수를 의미하는 '일곱'이나 '열둘'과 달리, 제한되고 불완전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파괴력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엄격히 통제된다는 점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이 고통은 전갈에 쏘인 것 같은 극심한 고통으로,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듭니다(9:6). 이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 소망이 단절된 채 겪는 극심한 정신적, 영적 고통(anguish)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부재 속에서 악에게 내던져진 인간 실존의 비참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본론 3: 아바돈(Apollyon), 파괴를 이끄는 무저갱의 왕


이 혼돈의 군대는 무질서한 오합지졸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있으니, 바로 "무저갱의 사자"입니다(9:11). 요한은 그의 이름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병기하여 소개합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바돈(אֲבַדּוֹן, Abaddon)'이며, 헬라어로는 '아볼루온(Ἀπολλυων, Apollyon)'입니다. 두 이름 모두 '파괴', '멸망'을 의미합니다.

이름 자체가 그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그는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파괴자(Destroyer)'입니다. 그의 등장은 황충 재앙이 단순한 악령들의 산발적 공격이 아니라,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악의 세력에 의한 것임을 확증합니다. 그는 사탄 자신, 혹은 사탄의 대리인으로서 최고위급 악마적 존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바돈의 존재는 첫째 화의 본질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인간을 파괴하려는 악의 체계적인 시도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파괴자조차도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안에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며, 그의 활동 기간과 범위는 철저히 제한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왕처럼 군림하지만, 그의 왕국은 영원하지 않으며 그의 권세는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무력해질 운명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 1절-12절, 무저갱에서 울려 퍼진 첫째 화(禍)의 전주곡 - 설교 연구 자료



결론: 심판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과 보호


요한계시록 9장 1-12절의 첫째 화는 단순한 공포스러운 환상의 나열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준엄한 경고이자, 영적 실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첫째, 이 재앙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악의 실재와 그 파괴력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아바돈의 군대는 영적 어둠이 세상을 뒤덮을 때 인간이 겪게 될 극심한 고통과 절망을 상징합니다. 둘째, 그러나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은 굳건히 서 있습니다. 악의 활동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가능하며, 그 기간(다섯 달)과 대상(인 맞지 않은 자), 그리고 강도(죽이지 못함)가 명확히 제한됩니다. 셋째, 이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보호의 약속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킵니다.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은 이 끔찍한 영적 재앙에서 제외됨으로써, 세상의 어떤 혼돈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보호 아래 있음을 확증합니다.

따라서 첫째 화는 절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오히려 경고를 통한 회개의 촉구이며, 성도들을 향한 위로와 확신의 메시지입니다.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9:12)라는 구절은 더 큰 심판이 남아있음을 예고하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하나님의 인을 맞은 백성인지, 아니면 아바돈의 파괴 아래 놓일 세상에 속해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전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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